2016 / 05 /19

[서울복지신문]김대식 복지칼럼-사랑이 답이다

상대를 사랑하면 믿음은 더 성숙해진다.

세상을 살다보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칫 적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런 경우는 회사를 운영한다든지 조직 속에서 생활하는 중에 일어나는 횟수가 잦다. 그 적은 외부에 있기도 하고 내부에 있을 수도 있으나 가장 큰 적은 내부의 적이다. 부지불식간에 풍지박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명장들이 가장 믿었던 내부의 사람들에 의해 배신을 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원 전 44년 3월 15일 로마의 황제인 줄리어스 시저는 “브루투스 너 마저?(ET TU BRUTE?)”라는 말을 남기고 가장 믿었던 부하인 부루투스에게 암살당했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에 통일의 기반을 닦은 무장으로 전국 다이묘들을 평정하고 일본 전국을 통합한 명장 오다 노부나가가 1582년 믿었던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할복자살했다. 그는 죽기 전에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반면에 몽골 대륙을 정복한 징기스칸은 내부의 적을 철저히 경계하여 싹을 없애고 외부로 달려 나가 수많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다. 내부의 적을 미리 다스렸기에 소수의 군사로 그 큰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주군을 암살했을까? 부루투스는 자신이 시저를 죽인 것은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하여 로마가 독재로 가서는 안 되었기에 그를 죽였노라고 강변했다. 미쓰히데는 최선을 다해 노보나가를 위해 일했는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노보나가에게 혹시 죽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소심함으로 선수를 쳐서 암살을 계획했다.

과연 이들의 변(辯)이 옳을까? 설사 그들의 말이 옳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배신이며 믿음이라는 심장에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위선의 칼을 꽂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결론적으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믿음을 맹목적으로 믿었던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여진다. 두 사람간의 믿음이란 목적지가 같은 한 방향을 바라볼 때만 그 믿음이 통한다. 믿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하게도 한다.

한 방향을 바라볼 때 진정한 믿음이라는 공통분모가 만들어진다. 각기 다른 방향과 생각이 달라서는 믿음을 공유 할 수 없다. 특히 요즘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공동체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일이 된다.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함께 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바로 사랑 임을 잊지 말자. 상대를 사랑하면 믿음은 더 성숙해진다. 

 
[자료출처: 서울 복지신문  ▶▶▶▶http://www.sw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3192]